클래식을 읽는다
데미안 생각을 했는데...
할 말이 많겠다.
이 외에도 장강명의 < 한국이 싫어서>
김중혁의 < 악기들의 도서관>을 읽는다.
1877년 7월2일 남독일의 소도시 칼브에서 태어났다. 인도 출생의 어머니와 에스틀란트 출생이며 목사인 아버지로부터 동서양의 영향을 골고루
물려받으면서 성장했다. 이러한 정신적 바탕 위에 1904년 소설 <향수>를 발표, 작가로서의 명성을 굳혔다.
그 이후 여든 살 1962년 8월 9일을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뜨거운 절망과 고뇌, 제2차세계대전이라는 시대의 혼돈 속을 방황하변서 많은 명작을 남겼다. 시집으로 <낭만적인 노래> <방랑> 등이 있고, 소설집으로 <데미안>< 싣달타><지성과 사랑>< 유리알 유희> 등 다수가 있다.
1946년 노벨문학상과 괴테상을 수상했다.
헤세의 생애와 문학
Hermann Hesse는 20세기 독일의 대표적인 문학자인 퍼마스 만과 릴케보다 2년 늦게, 한스 카롯사보단는 1년 빠른 1877년 7월2일 독일의 서남부 슈바뵨 지방의 조용한 시골마을인 칼브에서 태어났다. 후에 헤세는 이 마을을 "브레멘과 나폴리, 윈과 싱가폴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85년에 걸친 생애 동안에 헤세는 수많은 작품을 썼으나 그 전체를 '내면으로의 길'이런 정의로써 요약할 수가 있을 것이다. 오로지 '내면으로의 길'을 추구하여 온 현대작가라 한다면 헤세야말러 그 일인자일 것이다. "인간의 생활은 자기자신으로의 길이다.'라고 소설 <데미안> 속에서도 쓰여져 있다. 따라서 그의 수많은 작품들은 이 자기발견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즉, 이름이나 연령, 직업은 다르다 하더라도 그들 작품애는 단 한 사람의 주인공밧게 없는 것이다. 아 단 한 사람의 인물이 사회와의 관계에 있어서, 떠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 있어서 스스로를 반ㄴ성하고 고찰하는 독백과 대화와의 연쇄야말로 헤세 문학의 총체인 것이다.
헤세의 문학과 사상에 특히 커다라난 영향을 준 것을 열거해 보면, 우선 헤세는 로망파로서 출발하였다. 노발리스 1772-1801)ㅏ와 루드위그 틱 1773-1853)이 인도자였다, 지성보다도 열정에 우위를 두고 ' 내면으로의 길' 을 명하는 그 자신의 본질, 그것은 아직 명확한 자각으로까지는 되어 있지 않았지만 내부에서 잠자고 있는 스스로의 본질의 선종을 두 사람의 로망파 시인 속에서 발견했던 것이다. 본내 로망주의는 양극선의 어쩔 수 없는 분열 위에서 꽃피운 것으로서 이것은 헤세 자신의 문제성이기도 하였다. 특히 노발리스의 , <하인리히 훤 옵타딩겐> (우리 나라에서는 <라란 껓>이란 제목으로 알려져 있는 소솔)이나 <단장>에 나타나 있는 자연철학적인 사상에 깊이 공명 한 듯하다. 그것은 자연의 질서 속에서 인간은 어떠한 지위를 차지하는가, 또는 인간은 자연의 신비에 어떻게 관여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다. 1928년에 헤세는 노발리스의 분집을 스스로 편집하였고 젊었을 때 <소발리스 (Der Novalis)>라는 제목의 숩작이 있으나 둘다 이 요절한 시인에게 보내는 헤세의 감사표시이다. 인간도 또한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생각은 자연에 대한 소박하고 열렬한 사랑을 설명한 앗시지의 성 프란체스코에게 헤세를 인도해 주었다. 1904 년, 헤세는 소전 <앗시지의 프란체스코>를 이 성자에세 바쳤다.
다음 단계에서 헤세는 머나먼 동야의 영혼에 이끌린다. 이것은 이미 서수한 바와 같이 양친의 피에 감화된 것도 있으나 유럽이 그에세 주루수 없었던 것, 즉 세계의 조화, 일치에 참여하는 실마리르 불타 석가의 가르침에서 구하려고 했던 것이다. 불교적인 명상아야할로 세계의 마음에 도달하는 실을 열어 주고,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평안으로 인도해 준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기대로 가슴을 두군거리며 1911 젼 여름 , 그는 인도로 여행을 떠났다. 인도 본토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았으나, 이 여행은 환멸로 끝났다. 20세기의 인도는 고대 인도철학과 아무런 관계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중국의 윤리사상에서는 충분한 만족을 얻은 듯하다. 노자가 말하는 '도'가 인도의 '완성'이나 그리스도교의 '은충'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1916년경 헤세는 심한 신경쇠약에 걸려 정신병의랑박사의 티렬ㄹ를 받고 , 이것이 계기가 되어 프로이드와 융의 저작을 읽고, 정신분ㄴㄱㄱ=석적 사고가 헤세의 세계로 들어오게 되었다.
제 1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다음해애 출판된 <데미안>은 이교적인 자연찬가의 작품이다. 여기에서 헤세는 전총적인 종교나 시민도독에 의한 ㅓ생의 쇠약화, 자기의 협소화에 반대하며 <선악이 피안>에 서 있는 초인사상을 주장한 니이체의 사도가 되었다. 이와 동시에 헤세는 양친의 가정을 지배하고 있었던 그기스도교적인 것에서 완전히 탈피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제 1 차 세계대전에 의해 르내상스 이래의 근대적 세계관의 붕괴를 육체적으로 체험한 현대 유럽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1931년 여름, 친구 보트마의 호의로 생애의 주거로서 제공된 새로 지은 집 , 즉 <카자 헤세> (헤세의 집)로 옮긴 헤세는 11월, 이미 4년 전 부터
공동생활을 하여 왔던 오스프리아 태생인 미술사 연구가 니논 돌빈과 정식으로 결혼한다. 당시 36세인 니논 부인은 그 후 30년 가까이 ㅏ헤세의 좋은 반려자였다. 겨우 재위의 안정을 얻은 헤세는 이 새부터 필생의 대작인 <유리알 유희>의 집필로 들어간다. 그리고 이것은 1942년 말 완성되어 다음해 스위스에서 발행된다.
그러나 그 이후 헤세로부터는 작품이 탄생되지 않는다. 대전이 종결된 그 다음해인 1946년, <유리알 유희>는 독일에서도 출판되어 괴테상과 노벨문학상을 계속해서 받는다. 각지에서 수많은 양의 편지나 끊임없는 방문에 망쇄되면서도 헤세는 명성을 멀리하고 조용한 만년을 즐기며, 1962젼 8월 9일 뇌출혈로 인해 85세의 생애를 끝마쳤다.
헤세는 원래 양극성의 작가이고 시인이다. <데미안>에 나오는 아프락사스 신은 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악마이기도 하다.
지와 사랑, 정신과 관능, 신과 자연, 영혼과 육체, 순결과 무뢰,------ 헤세는 이 것 중 어느 한편에 가담하혀 다른 한켠을 단죄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런 가담이나 단죄는 생을 빈약하게 하기 때문이다.
헤세는 그의 출세작 < 페터 카멘친트> 이외에도 헤세문학의 특색이 된 서정성과 자기 고백이 조형과 억제된 사실성을 묘사한 <나르찌스와 골트문트>, 분방하고 난해한 <황야의 이리> 인도의 유구한 강을 떠올리게 하는 문체로 쓰인 <싯타르타>등 많은 시들과 주옥같읕 작품들을 발표했다.
이 책에 수록된 < 수레바퀴 밑에서>는 자서전적인 냄새가 짙은 작품으로, 시험과 주입식 교육에 쫒기고 시달리며 자연에 대한 환상적인 갈망 끝에 공허한 죽음으로 떨어지고 마는 그의 소년시절의 체험을 그린 소설이다. <크눌프>는 자연에의 향수와 방황으로 끝없는 삶의 자유와 낭만을 구가한 방랑자 크눌프의 삶을 관조적인 시각으로 투영시킴으로써 삶의 교훈적인 메시지를 던져 주고있다.
<수레바퀴밑에서 >에서 발췌함
옮긴이- 정희수
전북 부안 태생 외국어대 독문과 졸업
번역서 <독일인의 사랑>< 변신>< 말테의 수기>
크눌프
Knulp is a short story by Hermann Hesse
published is 1915 by S.Fixcher Verlag. The three stories about a vagrant that Hesse wrote between 1907 and 1914 are among his "Garbersau" stp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