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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5 00:14

시카고 겨우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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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겨우살이400X643.png

 

 

 

 

  시카고 겨우살이

                                                                                                                        장영은 

 

 

 

“미아, 아무래도 난 겨울이 없는 곳으로 이사 가야겠어.”

 봄은 아직 멀었는데 친구 미아가 10개월 후에 떠날 여름 휴양지에 집을 예약했다는 말에 내 입에서 신음하듯 흘러나온 말이다.

 방 세 개, 층계가 없는 렌치 스타일의 단독주택은 구십삼 세를 넘기신 어머니와 갓난 손녀까지 배려한 것이며 정원에서 해변 모래사장으로 곧바로 달려 나갈 수 있는 그 집은 시카고 미시간 호수 변에 있는 자신의 별장 같은 집으로 플로리다 남쪽에 있는 섬에서도 그런 집을 얻었나 보다. 일주일에 4,500불, 딸과 아들 가족이 각각 4명에 노모와 남편, 열한 명 남짓한 대가족이다 보니 호텔보다 자유롭고 독채로 빌리는 편이 오히려 비용이 덜 든다며 만족해했다.

겨울이 없는 곳에서 산다면 일단 저런 거금을 한 주에 대여비로 소비할 일은 없지 않을까 하며 나는 셈하기를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아이처럼 눈이 휘둥그렇다.

 

“제이, 차라리 겨울이 있어도 조금 덜 추운 곳으로 이사하는 건 어떨까.” 

미아에 이어 플로리다에서 막 돌아온 제이에게 내가 한 말이다.

비행사 출신인 남편 덕에 평생 비행기를 무료로 탈 수 있는 제이는 뉴욕과 유럽에 사는 손자들에게 매달 가는 것도 부족해서 겨울이면 시카고를 떠난다. 지금 사는 시카고 교외의 집도 작지 않은데 두 달간 비워두고 열다섯 시간씩 운전하고 가서 한 달에 3,300불씩 두 달을 내고 지냈다니 시카고의 겨울은 플로리다 날씨에 반해 떠나는 사람들의 두뇌 속을 먼저 얼려버리는 것 같다.

 

50개 주로 이루어진 나라답게 거대한 땅인 미국!

온대지방과 열대지방으로 나뉘는 것은 물론 겨울엔 시베리아에 버금가는 추위를 감수해야 하는 지역도 있는데 시카고도 그중에 하나였다. 지구 온난화 때문에 몇 년 전부터는 겨울 추위가 옛날 같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사람 대다수가 겨울이면 따뜻한 남쪽으로 추위를 피해 내려간다.

시카고는 북위가 평양과 비슷하다. 추위에 약한 내가 43년 살아온 시카고를 떠나지 못한 이유가 서너 가지가 있었다. 하는 일 때문에, 가족 때문에,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건 돈 때문이었다. 뭉텅이 돈을 한군데보다는 여러 군데로 나누어 써야 하는 생활 때문이라고 해두겠다.

 

이처럼 기후도 다르고 언어가 다른 여러 인종이 사는 이곳에 머리카락 색이 같은 우리 한국인조차도 노년 삶의 모습이 매우 다르다. 직업에 종사한 햇수가 연륜과 비례해서 각자 은퇴하고 나면 저마다의 생활 양식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요술 지팡이가 한 자루씩 손에 들리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젊어서는 비슷비슷했던 삶의 모습이 노년이 되면서는 다양하게 바뀌는 것을 자주 본다. 먼저 일찌감치 재산 정리를 하고 단출하게 시니어 아파트의 삶을 사는 부부의 저렴한 대여비와 그들의 일 년 식비 총액수가 어떤 이들의 한 달 주거비와도 같을 수가 있고 또 다른 유형으로는 자식들의 요청으로 자녀 집으로 들어가 손자들을 봐주며 함께 살기도 하면서 용돈까지 받아 가며 여행을 다니기도 한다.

 

최소한의 경비로 살아보기 프로젝트 실행 몇 년째

첫해는 바이러스 때문에 성공했다.

그 옛날, 산에 들어가 공부하는 고시생처럼 그동안 읽지 못한 책에 파묻혀 읽으며 적고 기록했다. 바이러스로 인해 사람들이 맥없이 쓰러지는 안타까운 시절에 나는 거꾸로 생명의 신비 속에서 경이감을 맛보기 위해 레몬 씨, 아보카도, 바이올렛 등 씨를 심어 싹틔우기와 분재에 정신을 쏟고 지인들과 나눔 속에 사진과 글을 남기며 디카시를 썼다. 

그해 겨울은 눈도 많이 오고 지독히 추웠지만 팬데믹 동안의 나의 휴가는 햇살 가득한 온실과 같은 조그만 집이면 족했고 행복했다. 가지 못하고, 나갈 수가 없으니 만나지 못하고, 외출을 금하니 모든 면에, 자연스럽게 절제하는 데에 익숙했다.

 

팬데믹이 끝나고 회복기에 들어서자, 모든 일상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해가 거듭될수록 점점 가속이 붙는 듯하더니 다시 시간과의 타협이 시작되고 그때 정리되는 생각이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갇혀 지내야 했던 시절, 살아있으나 언제 죽음이 코 앞에 닥칠지 모르는 불안한 때가 불과 일, 이년이었던 어려움이 아주 지나간 것이 아니라는 것, 아니 그건 연습에 불과한 것, 인생의 마지막 겨울이 우리에겐 아직 남아있음을 떠올린다. 몸도 쇠하여지고 눈도 어두워져 거동조차 불편할 수 있는 노년기를 어찌 맞으며 살아갈지 하는 자문자답이었다. 

죽음의 기운이 전 세계를 휩쓸던 시기에 식물의 싹을 틔우며 맛보았던 경이로움과 희열을 골수에 새긴다. 생명은 절대로 연약하지 않으며 죽음 같은 흙을 뚫고 나오는 이겨내는 단어임을 잊지 않는다. “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기억하며 흰 눈 속에 푹푹 빠져가면서도 시를 써 내려갈 수 있었던 것은 지독하고 혹독한 긴 겨울이라서 가능한 것이니 그렇게 하면 돼, 그리할 거야.” 하며 훗날 시카고에서 겨우살이를 그려낸다.

 

2월 14일 2024년 

 

약력

장영은 (재크린, Jackline Chang)  jangchang1030@gmail.com

<순수문학> 수필등단, <해외문학>시, 가작 입선

시카고 문인회 (1990-2018)

현 시카고 예지문학 회원 ( 2006-현재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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